노래

암연 / 고한우

dEtH 2009. 2. 5. 23:40

내겐 너무나 슬픈 이별을 말할 때
그댄 아니 슬픈 듯 웃음을 보이다
정작 내가 일어나 집으로 가려 할 때는
그 땐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어

울음을 참으려고 하늘만 보다가
끝내 참지 못하고 내 품에 안겨와
마주 댄 그대 볼에 눈물이 느껴질 때는
나도 참지 못하고 울어 버렸어

*
사랑이란 것은 나에게 아픔만 주고
내 마음 속에는 멍울로 다가 와
우리가 잡으려 하면 이미 먼 곳에
그 땐 때가 너무 늦었다는데

차마 어서 가라는 그 말은 못하고
나도 뒤돌아 서서 눈물만 흘리다
이젠 갔겠지 하고 뒤를 돌아 보면
아직도 그대는 그 자리에



어떤 것에 대한 가치는 그 것을 잃어버렸을 때 가장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. 늘 곁에 있어 소중한 줄 모르다, 그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그동안 편하게 취(取)했던 것이 너무나도 소중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. 사랑도 마찬가지다.

지난 1997년 발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고한우의 '암연'은 사랑을 잃고 난 후 깨달은 진정한 사랑에 대한 후회가 담긴 노래다. '암연'에는 3년 간 자신을 헌신적으로 지켜주던 사랑이 떠나던 날, 그녀를 집에 들여보내며 느꼈던 가수 고한우의 암담함이 담겨 있다.

고한우는 대학시절, 언더그라운드에서 통기타를 메고 활동하던 때 백화점 디스플레이 일을 하던 여자를 선배의 소개로 만났다. 그 여성은 고한우에게 정성을 다했지만 고한우는 그런 사랑을 몰랐다.

그녀는 택시가 잡히지 않으면, 용달차를 불러 타고 오면서까지 약속시간을 잘 지켰지만, 고한우는 그녀를 기다리게 한 날이 부지기수였다.

어느 날은 미국에서 온 친구가 붙잡는 통에 그녀를 4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다. 그녀와의 약속시간에 맞춰 그 친구와 헤어질 수도 있었지만, 그가 붙잡았고, 자신도 여자친구가 몇 시간이고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. 그녀는 고한우를 기대처럼 기다렸다. 새벽 2시 약속장소에 나간 고한우는 4시간째 지키고 있는 그녀를 만났지만,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.

그러나 교제한 지 3년이 지난 어느날, 그녀는 고한우에게 이별을 고했다. 서로 나이도 들어가고, 고한우의 미래를 생각하면 자신의 미래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이별을 선택했던 것이다.

이별하던 날, 고한우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. 마지막으로 그녀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되돌아가다, 눈물을 머금은 채 뒤를 돌아다봤다. '그녀가 이젠 들어갔겠지'하고 뒤를 돌아봤지만, 그녀는 집앞 가로등 아래서 떠나가는 자신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.

고한우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게 됐다. 평소처럼 고한우는 일기를 썼다. 후회를 담은 글을 써내려갔다. 고한우는 얼마 후 그 날의 일기를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. 제목을 부치지 못한 고한우는 공연을 하면서 그 노래를 자주 불렀다. 어느 날 자신처럼 사랑을 잃은 가장 친한 친구가 사전을 펼쳐보였다.

암연:연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의 아득함.

친구는 고한우에게 노래제목으로 '암연'을 추천했고, 가슴에 와닿는 그 단어를 곱씹으며 제목으로 정했다. 노래가 발표된 후 명세빈이 삭발로 출연해 화제를 모은 초코하임 CF에 삽입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. 또한 SBS 드라마 '여자'에도 삽입되면서 그야말로 큰 히트를 기록하게 됐다.

고한우는 '암연' 인기를 얻은 후 한 차례 그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. 그녀는 자신에 관한 노래인줄 이미 알고 있었다.

그 전화를 계기로 고한우는 헤어진 지 8년 만에 다시 만났다. 고한우는 여전히 미혼이었고,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 뒤였다. 8년만의 만남은 담담했다.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버렸다. 지금은 그녀와 친구가 됐다.